국망봉 정상석 옆에 주저 앉아서 한참을 쉬었다. 햇볕은 따가운데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하기만 하다.
국망봉은 화악, 명지에 이어 경기도의 제 3봉이다. 능선 앞뒤의 땅벌봉과 개이빨산(견치봉)과 더불어 한북정맥의 중심에 해당하는데 거느리고 있는 능선이 남성적인 근육질이다. 또한 골짜기들이 깊어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끝없이 펼쳐진 산너울을 넋놓고 바라보던 봄이가 갑자기 지리산의 주능선이 그립다는 말을 꺼낸다.
나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사이에 지리산을 찾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백두대간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더구나 가끔씩 찾을 때에도 남들이 잘 찾지 않는 비지정의 산길로만 골라 다녔다. 산객들이 많이 찾는 주능선을 나도 모르게 경원시하는 태도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조망의 아름다움으로 치자면 지리산의 종주능선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십수년 전에 김홍주 라는 산악인이 펴낸 '조망의 즐거움'이란 책이 있다. 산행의 세가지 즐거움으로 산위에서 맑고 밝고 크고 넓은 호연지기를 느끼는 것과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즐거움, 그리고 멀리 산천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들었다. 책속에 실렸던 지리산에서의 조망사진이 아직도 생생하다. 봄이에게 6월이 가기 전에 지리산의 주능선을 꼭 한 번 찾아보기로 약속을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재촉한다. 걸어야 할 능선을 가늠해 본다. 사진 중앙의 개이빨산이 지척이다. 바로 그 뒤 뾰죽하게 튀어나온 작은 봉우리가 귀목봉이다. 이른바 명지지맥의 분기점이다. 한북정맥은 이곳에서 오른 쪽 능선을 따라 맨 뒤의 운악산으로 이어지고, 명지지맥은 왼 쪽 움푹한 귀목고개로 떨어졌다가 다시 솟구쳐 올라 명지산으로 뻗어나간다. 귀목고개 뒤의 다소 펑퍼짐한 느낌의 능선은 연인산의 우정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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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가 넘어가면서 태양이 점점 더 뜨거워졌지만 견치봉을 지나 민둥산까지는 우거진 숲속을 걷는 길이라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짙은 녹색의 숲에서 나뭇잎과 풀냄새, 꽃향기가 퍼져나와 쉴새 없이 코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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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 35분 - 견치봉(개이빨산) 에 도착해서 인중샷을 찍고는 또 한참을 쉬었다. 봉우리의 형상이 개이빨 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붙여졌다고 하는데 봉우리 도착 전과 출발 후에 유심히 살펴 보았지만 개이빨 모양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산자락 마을에서 보면 어떨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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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사이에 또 봄이가 쪼그리고 앉아서 졸고 있다. 표정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1/2 지점인 도성고개에 가서 탈출을 고려해야 할 것 같구나.
봄이는 지난 2년간 백두대간을 함께 하면서 부쩍 동행의 횟수가 늘었다. 특히 다소 긴 산행거리의 원정산행에는 거의 빠짐없이 함께 했다.
산행 중에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육십을 바라보는 늙다리의 성질을 참고 묵묵히 발을 맞춰 주었다. 그것은 봄이의 튼튼한 체력 덕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따뜻하고 겸손한 성품의 탓이 크다. 타고난 산꾼이지만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맞춰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긴 시간을 함께 해도 대화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이 즐거운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지나칠 정도로 고지식하다는 점이다. 크든 작든 사회생활(모임)에서 머리회전이 빠르고 혀가 매끄러운 자들이 득세를 하는 세상에서 피해를 입기 십상인 성격인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말을 칭찬의 뜻으로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오랫동안 고지식하게 산길을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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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치봉을 떠나 용수골 갈림길을 지났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민둥산에 도착할 것이고, 그 후로는 큰 기복이 없는 하산길이니까 도성고개에 이내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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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 28분 - 민둥산 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요즘 캠핑 족들이 많이 찾는 강씨봉 휴양림이 지척이다. 바로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지만 급경사길이라 대개는 조금 길어도 도성고개를 거쳐서 휴양림으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표지목도 그렇게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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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 헬기장에서 돌아 본 국망봉과 젼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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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으로는 오른 편에 도성고개가 보이고 강씨봉과 청계산이, 맨 뒤로 운악산이 보인다. 이제 방화선을 따라 도성고개로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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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내리쬐는 여름날 그늘 한 점 없는 방화선 길을 걷는 것은 고역이다. 내리막 길임에도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맨땅도 아닌 방화선길에서 후끈한 지열이 풀냄새에 섞여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금씩 가까이 다가 오는 운악산의 모습을 위안으로 삼아 도성고개를 향해 한 걸음씩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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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고개에 이르기 전에 마지막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무더위에 지쳐서였을까 국망봉 오름보다 세 배는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던 735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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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29분 - 도성고개 에 닿았다. 사진 좌축으로 내려가면 강씨봉 휴양림이고, 우측으로 하산하면 포천 이동면의 제비울 계곡을 만나게 된다. 휴양림 쪽으로 난 숲속으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하고 눈도 붙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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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나무그늘에서 거의 한 시간 반을 쉬었다. 봄이에게 몸상태를 묻고는 탈출을 권유해 보았다. 지형도와 고도표을 열심히 보던 봄이가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계속 진행할 의지를 보인다. 아직 11km 이상 남은 거리를 감안하면 단호하게 끊었어야 했다. 결국 탈출하는 바람에 나중에 다시금 도성고개에서 시작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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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11시 45분에 도성고개를 출발, 강씨봉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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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아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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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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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이 힘들 때마다 뒤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되새겨 본다. 아랫마을은 도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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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고개 지난 첫 번 째 봉우리에 올랐다. 지형도를 보니 백호봉이란 봉우리이다. 지척의 강씨봉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까 고개에서 쉬고 있을 때 휴양림 쪽에서 올라온 산객들이다. 먹을거리를 잔뜩 지고 오르던데 강씨봉 정상에 오르면 막걸리라도 한 잔 얻어마실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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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20분 - 강씨봉!! 봄이의 얼굴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한 번 지쳤던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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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지점인 노채고개까지는 아직도 10km 를 더 걸어야 한다. 시간이 점점 늘어지고 있다. 어디에서 길을 끊을까 고민하는데 봄이가 조금 더 가보자고 한다. 일단 명지지맥 분기점인 귀목봉 갈림길 전의 오뚜기고개에서 임도로 탈출하기로 마음을 먹고 뜨거운 방화선 길을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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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만 나타나면 쉬기를 반복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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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표지목에서 100미터를 더 간 지점에서 멈췄다. 오뚜기 고개까지도 1km 이상 남아서 강씨봉 방향으로 200미터 되돌아 간 지점에서 능선을 타고 탈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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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12분 - 강씨봉 1.2km 지점으로 되돌아 왔다. 이 표지목 맞은 편으로 작은 탈출로가 열려 있다. 지형도를 보니 무리울 계곡으로 떨어지는 능선길이다. 다음에 이리로 올라와 길을 이어가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하산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곧추 선 능선이라 하산에 여간 애를 먹은 것이 아니다. 이 길로 올라올 염두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봄이도 차라리 영원한 땜빵으로 남겨두면 두었지 이 길로 올라서 정맥을 잇고 싶지는 않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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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2km 급경사를 한 시간 넘게 걸어 내려와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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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 28분 - 무리울 계곡 도착 산행 종료! 가물어서 그런지 계곡에 물이 말랐다. 간신히 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 더워진 몸을 식히고 나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더위에 힘들었던 산행이 마치 꿈속에서 벌어진 일인 듯 하다. 택시를 부르고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다음 정맥은 도성고개로 올라서 강씨봉을 한 번 더 걷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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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마치 고개에 도착했다. 새벽에 젖은 채로 구겨 넣었던 텐트와 깔개들을 햇볕에 말려서 정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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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치 고개의 쉼터! 저기 지붕이 있는 평상에서 일박을 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쉼터 뒤로 올라가 텐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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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치 고개를 떠나기전에... 새벽 어둠 속에 올랐던 절개지를 바라보며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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